뜻있는 곳에 언제나 함께 해주셨던 하나님! 지난 날 하나님안에 희노애락의 수많았던 사연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금 두드립니다!
안개 자욱이 뒤덮은 산굽이 굽이 얼마나 올랐을까. 광활한 대자연의 정경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에 싱그러움을 더 뿜어낸다. 호수 위의 고풍스런 팔각정, 바위 솔과 각양각색 푸르른 나무들, 드넓은 잔디밭, 보통 사람의 키보다 훨씬 더 높이 솟아 앉아있는 바위들이 묘하게 어우러진 곳, 바로 정명석 목사의 고향 월명동에 첫 발을 디딘 날. 바람을 타고 물씬 풍겨져오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나를 감싼다.
높디 높은 대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인대산 밑, 예로부터 달이 밝다 하여 달밝골이라 불린 이곳에서 정명석 목사는 1945년 음력 2월 3일에 태어났다. 칠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난 정명석 목사는 1989년부터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함께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란 첩첩산중 두메산골이었던 월명동을 하나님의 궁, 자연성전으로 하나하나 개발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명석 목사는 처음에는 고향땅 월명동을 자연성전으로 개발하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개발이라기보다 ‘땅을 좀 넓게 닦아 놓고 쓰자.’ 생각하고 땅을 닦기 시작했다. 1년에 한두 번씩 수련회를 할 때,월명동에서 하려는 목적으로 땅을 닦았다. 그때 모두 모여서 감도 따 먹고 배구도 하는 데 쓰자 했다. 그렇게 점점 크게 만들다가 하나님의 구상을 받고, 결국 본격적으로 월명동 개발을 시작했다.
정명석 목사가 뛰어놀던 마당을 넓혀 운동장을 만들고 앞산에다 콘크리트로 스탠드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한 계단씩 나무틀을 짜고 있던 어느 날, 뒷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한 장면이 보였다. 앞산에 거대한 돌들을 쌓아서 만든 계단이 보였는데 정말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했다.
하나님이 주신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돌조경 전문가들을 데려다가 하나님의 구상대로 무게가 45~50톤이 넘는 거대한 돌들을 뾰족하게 세워서 돌을 쌓아 달라고 했더니 그들은 해 본 적도 없고 위험해서 쌓을 수도 없는 허무맹랑한 구상이라며 돌을 눕혀 쌓아야 한다고 우겼다.
전문가인 그들은 늘 해 오던 자기 방식대로 돌을 눕혀서 쌓았다. 정명석 목사는 하나님의 구상을 그린 종이를 보여 주며 아무리 설득해도 그들은 그를 비전문가라고 무시했고 결국 못 하겠다고 가 버렸다. 기술자들이 하나님의 구상대로 못 하니 하나님은 날씨로 상황과 여건을 틀어 결국 정명석 목사와 제자들이 돌 조경을 만들었고, 자연성전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지을 자재가 있어도 구상하고 만들지 않으면 멋진 건물을 얻지 못합니다.
이같이 자기에게 복 받을 자료인 몸과 생각이 있어도 자기를 만들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복을 얻지 못합니다. 복도 하나하나 행하여 얻는 것입니다.”
나를 뜨끔하게 한 정명석 목사의 설교 말씀이다. 정명석 목사가 처음 월명동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기술과 환경과 여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가진 건 하나님의 구상과 해내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였을 것이다. 정명석 목사와 그의 제자들의 땀과 수고의 몸부림으로 하나하나 행한 결실의 산물이 남긴 월명동 자연성전.
나는 무언가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면 이것저것 갖추어져야 비로소 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곤 한다. 어렵사리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을 때는, 수많은 기회들이 내 눈앞에 사라져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만 남아있다. 내 인생의 좌우명이 오죽하면 “뒤늦게 후회하지 말자!”였거늘. 그래서인지 정명석 목사의 설교 말씀은 더욱이 내 마음을 달구는 듯 했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 의미 있는 목적을 찾고 싶었다. 그냥 막 사는 건 무의미하니깐. 먹기 위해 사는 것, 놀고 즐기기 위해 사는 것, 얻고 누리기 위해 사는 것 등 각자의 취향 따라 여러 의미를 부여한 목적을 달 수 있겠지만. 보다 진정한 가치 있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인생 하루하루 늙어만 갑니다.그러다 인생 끝나게 됩니다.먹어야 먹어지고, 씻어야 씻어지고, 눈으로 봐야 봐지고, 귀로 들어야 들어지고, 손으로 잡아야 잡아지고, 생각해야 생각나고, 용서해야 용서가 되듯이, 뭐든지 행해야 됩니다. 누구든지 행해야 얻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인생 철학! 바로 행함의 대가다운 말씀이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얻고자 해도 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얻을 것도 못 얻게 된다. 하루하루의 인생의 해는 저물어 가는데, 언제쯤 인생 봄날 같이 활짝 피기를 마냥 기다리기만 할까.
누구나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그만큼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의 차이’라고 말하는 정명석 목사의 한마디 말보다 실천으로 이룬 삶은 월명동 개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명석 목사는 행함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복이 어디서 굴러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복이 어딘가에서 오기만을 기다리면, 복을 못 받고 끝납니다. 자기 몸과 생각에서 복이 옵니다. 자기 생각과 행위의 자료를 가지고, 자기를 만들고 변화시켜서 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면 가능하고, 안 하면 불가능합니다."
정명석 목사의 남다른 실천 정신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월명동 개발을 시작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어떤 것 하나라도 그가 깨달은 진리는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몸이 닳도록 실천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에 새긴다는 정명석 목사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자면, 마음에 새기는 것도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진리가 몸에 체질화될 때까지 실천하고 또 실천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의 삶이다. 정명석 목사 자신이 한 말을 몸이 닳도록 행한 일관된 실천의 삶이 제자들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무엇을 하든지 목적을 확실하게 정하고 나서 시작하라. 그 목적지를 향해 가다 보면 더 좋은 목적이 보일 것이다.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생각하지 말고 가는 방법을 연구하라. 속도보다 방향이다.”
“한 번에는 안 된다. 하고 또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작품이 된다. 조각품도 필요한 부분만 남았을 때 비로소 작품이 되는 것이다."
정명석 목사의 포기치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다.
예전에 그가 서울 평창동의 한 주택에서 전세살이를 할 때, 한 가정집 정원에 만든 돌 조경을 보고 종일 감탄했다. 그때는 돌 조경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랐을 때다.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지? 예술가가 했나? 특별한 사람이 만들었구나. 정말 아름답다. 이런 집에서 살면, 환경 천국이겠다. 이런 집을 보고, 천국 같은 집이라고 하는구나. 나도 땅이 있으면 저렇게 만들고 싶다. 돈을 모아서 이 집을 살까?’ 했다.
그 집 정원에 놓은 돌들은 1톤~2톤 정도 되는 돌이었고, 큰 것은 3톤짜리도 있었다. 돌 조경 전체 길이는 10m 정도이고, 높이는 5m 정도였다. 결국 그 집은 못 사고, 전세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정원도, 마당도 없는 집이었다.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담을 넘어서 갔는데, 그곳에 터 하나가 있었다. 3평 정도를 닦아 놓고, 답답할 때마다 나가서 잠깐씩 쉬고 제자들과 대화도 했다.이것을 본 제자들이 모두 안쓰러워했다. 이때 동생과 이야기했는데, 고향에 두고 온 땅이 있으니 그 땅을 조금씩 닦자고 했다.
그때 정명석 목사는 서울에서 목회를 했기에 고향에는 가끔씩 갔다. 너무 먼 것이 단점이었다. 그러나 잘 가꿔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고향 마을에는 몇 가구만 살고 있었고, 논밭을 빼 놓고는 골짜기 전체가 잡초 지역이었다. 누가 보아도 쓸모없는 산골짜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 쓸쓸한 곳이었다.
정명석 목사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귀국하여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살았던 곳에 손수 함석집을 지어 놨는데, 그 집은 손수 지은 것이라서 정이 들었다. 그래서 ‘이 집은 내가 가지고 있어야지.’ 했다.
서울에는 그의 땅 한 평도 없었지만, 고향 집터 200평은 그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땅이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목회를 해도 한 번씩 고향에 오고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부모님이 계셔서 가기도 했지만, 거기서 정명석 목사가 크고 자라며 수도 생활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향 땅을 잘 닦아 놓자.’ 하고, 월명동 개발을 시작했다.
몰랐을 때는 어떤 특별한 사람만 돌 조경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두고 하나님의 구상대로 행하니 생각지도 못하고 상상치도 못할 일을 그는 해낸 것이다.
정명석 목사는 숱한 세월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두고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끝까지 몸부림쳐 일궈온 삶에서 깨달은 진리를 이렇게 전한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 자기를 만들어서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두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나온 실업계 고교 첫 골든벨 소녀로 소개된 김수영씨. 실업계 고교 최초로 골든벨을 울렸던 여수 소녀가 성장하여 꿈 멘토로 돌아왔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지독한 곱슬머리에 돼지 털인 머리카락이 너무 싫어 중학교 2학년 때, 과산화수소에 담그면 생머리가 된다는 말에 혹하여 담가보았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머리카락이 노랗게 변했고 다음 날 교사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다고 했다. 이날후로 문제아로 찍힌 김수영씨는 집을 뛰쳐나와 석 달 동안 거리를 떠돌다 자퇴했다.
그러던 그녀는 우연히 본 신문 기사로 인생의 항로가 달라졌다. 그녀가 본 신문 기사에 실린 이스라엘의 군인의 총에 맞아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팔레스타인의 아버지의 사진. 이 신문 기사의 사진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여수를 벗어나면 세상은 넓구나. 나보다 더 전쟁같이 사는 사람도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다시 갖게 되어 검정고시를 보고 여수정보과학교에 입학했다.
남들이 풀다 버린 문제집을 주워 공부하면서도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그녀. 그녀에게도 인생길은 언제나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갖은 산전수전을 겪으며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고, 200여 곳에 입사지원서를 낸 끝에 글로벌 투자 회사에 입사했는데. 인생은 석 달 만에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입사 직후 정기검진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그녀는 그때 처음 ‘죽기 전에 꼭 이루고픈 꿈 73가지’를 썼다. 꿈 목록을 적기만 했는데 세상이 달라 보였다며 집은 여전히 가난했지만 꿈 외에는 다른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암은 다행히 수술로 완치되었다.
꿈 중 하나였던 ‘해외 취업’을 이루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정유회사에 입사한 그녀. 5년 후 퇴사 해 본격적으로 꿈 멘토에 나서게 된 것이다.
1년 동안 세계를 누비며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이루는지를 직접 카메라에 담아 방송했고, 베스트셀러가 된 책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등을 펴내는 등 그녀 역시 머릿속에 그리던 꿈을 몸소 실천을 이뤄내며 오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꿈 쓰기는 자기 자신과 인생 계약서를 쓰는 일’과도 같다고 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청년들에게 이 말을 전했다.
“중요한 건 ‘수저’가 아니라 ‘그릇’이에요. 금수저, 그러니까 부모 복은 수많은 복 중의 하나일 뿐이고요. 수저를 탓하기 전에 내 인생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부터 정하고 자기 자신부터 바꿔보세요.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요."
자신을 흙수저로 분류하고 체념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그녀의 진솔하고 자신 있는 이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김수영씨 역시 남모를 눈물과 땀방울의 실천으로 일궈낸 말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자기를 만들어 놓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자신이 있다. 인생은 자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고 말하며 정명석 목사는 ‘영감의 시 3- 시의 여인’ 그의 저서에서 ‘그릇’이라는 시로 귀한 인생 그릇을 만드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릇
- 정명석
바다그릇
물을담고
인생담아
살게했네
만물인생
생긴대로
그그릇에
담겼도다
그릇속에
안담으면
존재하지
못하도다
사랑그릇
어데있나
신의그릇
어데있나
창조주가
찾으신다
누가알고
가져가서
신을담고
사랑담아
귀한그릇
되올쏘냐
정명석 목사는 또 이러한 말을 남겼다.
“사람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으로 산다.”
어려서부터 정명석 목사는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눈에 띄기보다 미련해서 눈에 띄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 무시를 당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니까 하나하나 열심히 노력해서 1000가지를 잘하는 사람이 되자. 천(千)가지를 잘하면 천재지.”
가진 것이 없으면 자부심이라도 있고 자신감이라도 있어야 한다. 마음에서 지면 끝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 뭉클해지는 그의 진심어린 고백이다. 요즘 자신을 흙수저로 전락시키며 뭣 모른 채 부모 원망에만 젖은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보게 된다. 안 되면 누구 탓만 하지, 미처 발견치 못한 숨은 능력과 재능을 가슴 속 깊이 파묻어두고만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나 또한 어렸을 적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이 두려워서 내 운명은 여기까지인가보다 하고 미련만 남긴 채 덮어둔 적이 참 많다. 그래서 미련가득한 미지의 세계, 내 인생의 운명을 점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사람이 다 그렇게 될 운명이고 팔자면, 그렇게 다 살아야지, 못 사는 사람들이 왜 생기냐고 하며 열을 내시며 나에게 말씀하곤 하셨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말이 일리가 있는데, 누군가 내 앞날에 좋게 말이라도 해주면 마음만 그렇게 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정작 그렇게 살지는 않으면서. 실로 노력과 댓가없는 인생은 없다는 말에 백배 공감한다.
정명석 목사의 삶의 과정을 14단계로 정의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꾸 해보면 늘게 되고 신이 될 수가 있다. 누구든지 하면 할수록 경지에 달하게 된다.
처음에는 무감각하고,
두 번째는 아리송하고,
세 번째는 조금 알게 되고,
네 번째는 많이 알게 되고,
다섯 번째는 깨닫게 되며,
여섯 번째는 혼자 할 수 있게 되고
일곱 번째는 자신이 생기며,
여덟 번째는 가르쳐 줄 선생이 되고,
아홉 번째는 박사가 되어 연구하고 이해하며,
열 번째는 전문가가 되고,
열한 번째는 도사가 되어 행케 되고,
열두 번째는 초인이 되어 거침이 없고,
열세 번째는 신이 되어 행하며,
열네 번째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 단계 단계마다 차원을 높여서 수없이 될 때까지 반복하다 보면, 나도 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삶을 살 수 있겠지?
“도전이다! 도전하면 생각에도 면역력이 생긴다. 생각에 면역력이 생기면 높은 곳도 낮아 보이고 오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안된다고 하지 말고 힘들다고 하지말고 그냥 그렇게 멈춰 있지 말고 끈질기게 올라가라. 막상 도전해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어느새 더 높은 곳을 정복하고 있을 것이다.”
정명석 목사의 진정한 실천 속의 가르침이다.
내가 자신이 없다고 한 번 가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 일에, 도전의 손 한번 내밀어 보지 않고 이별한다면 나로 말미암은 기회의 때는 얼마나 서글퍼할까.
오늘은 정명석 목사의 고향땅이자 하나님의 자연성전인 월명동 개발을 통한 그가 가르친 감동적이고 살아있는 인생을 향한 메세지를 전했다.
“양팔 벌려 500명이 춤추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넓은 장소를 주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의 사람들을 만들어 춤추고 노래하고 나팔 불면서 다윗처럼 영광을 돌리고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옛날 왕궁에서 왕을 위해 하듯 춤추고 노래하고 풍악을 울리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드린 그의 약속 하나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낯설고 적적하기만 하던 이곳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역경, 고통, 괴로움,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해드리고픈 정명석 목사의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서 새 생명을 잉태하듯 10여년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정명석 목사는 월명동을 개발하듯이 자기 자신을 웅장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게 개발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어서 행하면서 부지런히 커야 됩니다. 그럼 됩니다! 환경 개발도, 다른 어떤 일도 자기가 행하면서 크는 대로 잘하게 됩니다. 해 보면, 더 잘하게 됩니다!”
오늘도 행함의 정신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