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어떤 수심이냐by 운영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수종 드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항상 걱정이 가득이었습니다.
“너는 어찌 그렇게 늘 수심이 가득하냐?”
“집에 형제들이 속 썩여서 힘듭니다.”
“그러면 기분 좋게 살도록 집에 가서 형제와 화동하라.”

또 다른 왕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 신하도 얼굴에 걱정이 가득이었습니다.
“어찌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냐?”
“다름이 아니오라, 제 나라가 전쟁으로 모두 무너져 그렇습니다.”
“그러냐? 그러면 쓰겠나. 알았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왕이 허락하신다면 가서 제 나라의 성벽을 다시 쌓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걸리겠냐?”
“몇 년 걸립니다.”
“그래, 그러면 속히 가서 행하라.”

왕은 누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할까요?
왕을 모시는 자라면 적어도 걱정의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그 정도 수준이 되어야 왕과 함께 나라를 이끌 수 있습니다.

결국 왕은 나라를 걱정한 신하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제국의 황제였던 왕은 그 신하를 그 나라의 총독으로 임명하면서
12년 동안 다스리도록 임명하고,
제 나라에 가기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었습니다.
그 신하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세우며 나라의 틀을 정비한 느헤미야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모시고 사는지 자주 잊게 됩니다.
나는 왕을 모시며 무엇을 두고 근심하는가?
땅을 위해 근심하며 사는가?
하늘을 위해 근심하며 사는가?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 당장 못한다 해도 하늘을 두고 근심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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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