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보금자리by 파란백조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이 노래 Home! Sweet Home은 대본 존 하워드 페인, 작곡 헨리 비숍의 1823년작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Clari, Maid of Milan)에서 불린 곡으로서, 작사는 역시 존 하워드 페인이 하였고, 작곡은 영국인 음악가 헨리 비숍이 하였다.

누구나 쉴 만한 곳이 필요하다.
작고 허름한 집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려주고 가족과 같이 사는 집은 험한 세상파도에서 우리를 쉬게 하고 힘을 얻게 하는 곳이다.

동물들에게도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빨판상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딘가에 기생할 숙주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자기보다 몸집이 엄청나게 큰 황소상어나 쥐가오리에게 붙어서 살아간다. 바다에 황소상어가 나타나면 다른 물고기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기 일쑤이나, 빨판상어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얼른 황소상어에게 달려간다.
황소상어나 쥐가오리는 바다에 천적이 없어 이들에게 붙어 산다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쉴만한 보금자리이다. 게다가 황소상어나 쥐가오리가 사냥해서 잡은 먹이의 일부가 떨어져 나오면 낼름 받아먹을 수도 있다. 그 대가로 빨판상어는 황소상어와 쥐가오리의 몸에 있는 기생충을 깨끗하게 청소해 준다. 그러나 황소상어에게 너무 많은 빨판상어가 달라붙으면 움직이는데 지장이 있기에 때론 피하기도 한다.

빨판상어의 삶이 너무 상어답지 않게 비굴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나름 삶의 지혜이다.
험한 바다에서 살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도 좋다.
우리 인생도 신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영육의 안전을 보장 받는 길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자, 누구인가.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있는 자, 누구인가.
결국 그 끝은 죽음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인생의 패배는 아닐진대, 신을 믿고 사는 것을 나약한 인간의 도피처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센 인생의 파도를 항해 할 때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를 부르며 그와 하나 되어 살아감이 지당하다.

빨판상어는 좋든 싫든, 황소상어가 가는 곳이라면, 쥐가오리가 가는 곳이라면 가야 한다. 하지만 창조주를 따라가는 것은 좋든 싫든 간이 아니다. 사랑해서다. 싫으면 같이 못가는 것이다.
그것이 빨판상어와의 차이점이다. 황소상어와 빨판상어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처절한 생존의 이유이다.
우리가 신을 믿는 첫 번째 이유가 생존의 이유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그 끝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창조주의 사랑을 알게 되어 사랑해서 영원히 같이 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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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