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큰 나무 옮겨 심기by 주아나

 

 

 

"나무가 왜 저래. 너무 볼품이 없다. 나무 큰 것을 심으면 뭐해. 그늘이 전혀 없잖아.

저래서 무슨 나무 노릇을 한다고 해.”

가을이 되었지만, 햇살은 여전히 살갗을 쏘아댔다. 주변을 둘러봐도 숨을 공간이 없다. 약이 오른다. 벌침이라도 맞은 것처럼 살갗은 빨갛게 달아오른다.

신도시 새 아파트에 이사 온 지도 2주가 되었다. 주변에 공원과 놀이터가 많다. 평상시 차가 많이 지나다니지 않아 매연도 적고 위험부담도 덜하다. 상가들도 깨끗하고 유해시설도 없다. 그런데 딱 한 가지 흠이 있다. 바로 그늘이 되어 줄 나무가 없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나무도 이제 막 청소년티를 벗은 아담한 녀석들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앞에 주변에 큰 나무가 몇 개씩 세워졌다. 아, 이제 따가운 햇볕 녀석을 피할 수 있겠군 하면서 굵은 줄기를 따라 내 마음에 희망이 부푼다.

“어? 뭐야?”
마음이 푹 꺼진다. 굵은 줄기가 위로 올라갈수록 가지가 뚝뚝 잘려져 있었다. 상층부는 그나마 가지와 나뭇잎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크기로 봤을 때는 초라함에 불쌍한 느낌만 더 할 뿐이었다. 허리가 구부러진 어떤 소나무는 뻗은 가지에 잎이 없어서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는 늙은이의 손 같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심어진 나무가 하나같이 저 모양이었다.

볼썽사나워서 몇 마디 하니 옆에서 묵묵히 보고 있던 신랑이 한마디 했다.
“큰 나무 옮겨 심으면 저렇게 해야 해.”
“아! 맞다.”
그제야 탄성을 내지르며 내 머리를 살짝 쳤다.
“큰 나무를 바로 옮겨 심으면 죽기 쉽다고 하잖아. 저렇게 가지를 많이 쳐서 마치 묘목 같은 모습으로 옮겨서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하네.”




아름드리 큰 나무를 옮겨 심어서 예전과 같은 꽃을 피우기까지 만 3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어떤 책에서 큰 나무 옮겨심기의 일정을 적어 놓은 것이 있어 잠시 적어 본다.
(94년 5월 꽃대 자르기, 뿌리 자르기/ 6월 1차 등나무 가지 줄이기/ 95년 가을 2차 등나무 가지 줄이기/ 96년 1월 이사 가는 곳의 흙 바꾸기/ 96년 2월 등나무 옮기기/ 96년 2월-97년 4월 적응 및 회복 기간 갖기/ 97년 5월 꽃 피우기)


특히, 나무를 들어 올릴 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나무의 몸통을 석고 붕대로 감싸는데 300그램의 4.5미터 석고 붕대가 654롤이 필요했고, 다섯 인부가 네 시간이나 작업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신앙의 길에 입문하는 것도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만큼 큰일이다. 그러고 보니, 30년 불교신앙을 버리고 이제 막 주님을 영접했다는 한 집사님이 생각났다. 기도가 아직은 어색해서 손바닥만 한 종이에다가 기도문을 적어서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신다며 수줍은 소녀의 표정을 보이시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혼 이후로 한 번도 일을 놓으신 적이 없으시고 배포 또한 사내 못지않은 크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성경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린 학생에게 물어보시고, 자신의 부족한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늘 학생처럼 공부하며 배우셨다.

분명 자신의 것을 놓고 자르고 베면서 새로운 터전으로 옮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가족에게서도 많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계속 불교나 하지 늘그막에 뭐 하는 짓이냐고, 거기가면 못하게 하는 것도 많다는데 왜 거길 가냐고, 뭘 믿으나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참 유혹도 많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생에 미련을 가질 나이도 아니시다. 인생 굴곡 다 겪어봤으니 이제 편안한 것만 찾아도 될 나이시니 말이다.

어쩌면 참 어렵고 불편한 길을 가시는데도 싱글벙글한 집사님이시다.
자신은 오히려 마음이 너무너무 가벼워졌다면서 완전 주님 뿅~가게 멋있다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미신다. 볼수록 그 깊어지는 믿음과 사랑이 완연히 뻗어간다.

아무리 봐도 아파트 앞에 있는 나무는 볼품이 없다.
적어도 3년은 지나야 나름 수형을 갖추며 가지가 뻗고 이파리가 자라나겠지.
그래도 다들 겸손한 마음으로 온 나무들이다. 제 모습 다 깎인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감사하며 서 있으니까. 가까운 날, 분명 좌우로 뻗은 가지가 시원스럽게 아파트 전체를 더 감싸주는 형상이 될 것이다.


집사님과 아파트 나무,
이 두 나무는 새로운 터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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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