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어느 세부 맘의 하루by 날개단약속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어느 날, 키가 큰 망고나무 가지는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는 나무 아래 바람이 작은 공터에서 자전거를 더 타고 집에 가겠다고 졸라댔다.
 
둘째 딸 주혜가 생긴 이후론 엄마의 애정을 반으로 나눠 가져야 한다는 현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주언이는 ‘주혜 때리고 싶어.’라든지 ‘혼자 있고 싶어요.’란 표현을 자주 한다.
그나마 이런 예고성 발언이라도 해주고서 액션을 취한다면 다행이다.  시시때때로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살배기 동생은 오빠 장난감을 만졌단 이유 하나로 꼬집히고 맞고 휴~.
자기 영역표시가 이렇게도 철저한  첫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곧잘 고민에 빠지는 나.  그러면서도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말끔한 기분으로 백치처럼 아이에게 다가선다.
 
난 평범한 한국인 아줌마다. 
결혼 직후부터 죽 필리핀 세부라는 곳에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단 특징 말곤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아줌마...

엄마가 빚쟁이는 아닐진대, 절대적으로 엄마가 무언가를 다 해줘야만 한다는 듯 조르고 또 조르는 아이들... 그리고 반사적으로 아이가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무한한 사랑으로 제공해야 하는 엄마라는 역할... 나 또한 여느 엄마와 같이, 그렇게 ‘엄마’라는 옷을 이제 갓 편안한 옷으로 입기 시작한 여인네가 되었음을 느낀다.

 

이곳 날씨는 사시사철이 덥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진이 빠진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 수 있다. 잠깐 며칠을 세부로 여행 오는 관광객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일지 모르나 장기간 살아가기엔 글쎄, 그것도 아이 둘 딸린 아줌마가 살아가기엔 쉽사리 진이 빠지는 곳이 세부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뭔지 모를 이곳에 대한 애증(?)이 아이들 아빠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있는 것 같다. 참 재밌는 감정이다..  이 낯선 곳, 이 나라에 대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맞닥뜨릴 때마다 작렬하는 투덜이 근성이 우리에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 여행사 직원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남편도, 첫 애 낳고 3년 넘게 살아 버티고 있는 나에게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집을 떠나 갈대아 우르로 나와 고생스럽지만, 축복의 삶을 걸어나갈 수 있도록 하신 것과 같이, 우리 가정에도 분명 예비하신 축복이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어쩌면 우린 삶 속에서 그 축복을 이미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아이들 웃음이 언제나 밴 이 집에서, 그리고 때로는 툭탁거리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들임을 누구보다도 절감하는 우리는 진정 축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고백합니다...!

 

 

writer by 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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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4/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