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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운전대by 날개단약속

 

 

 

 

 

 

                                                            세 운전대

 

 

 

아파트와 밭 밖에 없는 구석진 동네에서 시내까지 가기가 수월치 않다.
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아파트에서 시내까지 직선거리로는 가까운데 버스로 돌아가려니 아들도 나도 고생이다.
그런데 6개월 만에 시내로 걸어갈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다.
놀밭 사이로 길이 1km, 폭 2m의 시멘트 길이다.
버스로 30분 걸리던 것이 걸어서 20분이면 간다. 할렐루야!
이사 후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나의 기도를
왜 들어주시지 않느냐면서 푸념했던 나를 산뜻하게 KO시켜 주셨다.
이런 KO는 자주 맞고 싶다.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몇 번 편하게 왕복했다.
이 정도면 유아자전거 태우고 와도 되겠다 싶었다.
오늘 날씨가 5도에 바람도 잔잔하다.
책을 반납할 것이 있어 봄바람도 쐴 겸 아들을 유아자전거에 태우고 길을 떠났다.

 

처음에는 자전거에 자세를 고쳐 앉아 점잖이 가더니, 내가 가는 방향이 못마땅했나 보다.
조금만 오른쪽으로 꺾으면 아파트 놀이터가 나오고, 더 가면 오르막길 위에 공놀이 하기 좋은
잔디밭이 나오는데, 엄마가 자꾸 앞으로만 가니 심술이 난 모양이다.
자전거 핸들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였다.
놀이터 화단과 정면충돌했다.
길을 잘 간다 싶더니 멀쩡한 길을 두고 흙길을 덜컹거리며 간다.
혹시 타고만 있는 것이 답답한가 싶어서 내리게 한 뒤 스스로 밀게 했더니,
자전거 핸들을 잡아 엉뚱한 방향으로 비틀비틀 가다가 도로 뒤로 간다.

 

아, 뚜껑이 열린다.
신앙생활 10년 넘어 혈기 간신히 죽었나 싶더니 다시 살아난다.
아들은 죽은 것을 살리는 재주가 있나 보다.
이런 것은 주님의 능력으로만 알았는데... 참자. 참아야 오래 살지.

 

유모차로 태우지 않음을 백 번 넘게 후회했다.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40분 넘게 걸리면서 갔으니 참 오랜 산책 끝에 도착이었다.
역시 운전대는 아무한테나 맡기면 안되는 모양이다.

 

지난주에 친정에 갔었다.
여동생이 사랑하는 조카가 왔다면서 자신이 유모차를 끈다고 했다.
나야 가볍게 가니 좋다 하면서 동생한테 유모차를 맡겼다.
여동생은 신나게 출발하더니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길을 가다가 턱을 만나도 그냥 내달렸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보도 블럭을 가도 경운기 몰듯이 달달달 거리며 갔다.
아들은 유모차충돌실험의 마네킹 같아 보였다.
어떻게 충격을 주면 어떤 방향으로 쏠리는지 다양한 실험을 동생은 몸소 하고 있었다.
아, 동생을 유모차에 태워 흙길을 달리고 싶었다.

 

갈길을 모르는 아들에게 맡겨도 안 되고, 제 기분대로 달리는 여동생에게 맡겨도 안 된다.
아들을 잘 알고 챙길 줄 아는 내가 아들의 운전대가 되어 줘야 한다.

 

인생에는 세 가지 운전대가 있다고 한다.
내가 모는 운전대, 남이 몰아주는 운전대, 주님이 잡으신 운전대.
인생이라는 차는 아주 운전하기 피곤한 차다.
면허증 딴다고 누구나 몰 수 있는 차가 아니다.
그래서 나를 제일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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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