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그들에게 갈릴리 바다는 너무도 익숙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 예상치 못 했던 폭풍 속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왜 이 밤에 출항을 하자고 했냐’, ‘항로를 이렇게 잡은 건 너 아니냐’…
상호 책임을 물으며 비방을 했을 수도 있고, 우왕좌왕 별 방도를 다 찾다가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던 짐들을 바다에 싹 던져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 보고 이제서야 ‘우리가 죽게 되었다’ 했을 때 비로소 배 밑 바닥에서 ‘편히’ 주무시는 주를 떠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보십니까?”
천재지변의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제자들의 원망 섞인 부르짖음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셨습니다.
"천재지변의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을 나무라십니까?" 반문을 할 만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를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응당 주와 함께 탄 이 배가 결코 ‘파선’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어야 했음을 주께서 알려 주고 싶어하셨던 거 같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이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번에는 예수께서 제자와 함께 하지 아니하셨을 때 역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고비를 넘어 가고 있던 제자들을 향해 바다를 걸어 주께서 와 주셨습니다.
와중에 주께 바다를 걸을 수 있기를 청한 베드로가 주와 함께 바다를 걸을 수 있었던 이 위대한 장면에서 베드로는 오직 주를 향했던 그 시선을 ‘풍랑’으로 틀어버리면서 곤경에 빠졌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상황에서도 주를 바라봐야 하는 '바라봄의 법칙'을 웅변하신 것 입니다.
선상에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을 때 주께서는 배 밑에서 여전히 평온히 우리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혹 주께서 내 곁을 떠난 것 같이 보일 때도 주, 하나님은 내게 집중하시고 우리와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단지 주,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이 굳건한 지, 내 시선이 오직 하나님을 향해 있는 지가 관건입니다.
예수께서 아예 육체로 함께 하실 수 없게 되었던 때
마찬가지로 깊은 밤 폭풍을 만난 것과 진배없을 상황에서 바울은 사람들을 향해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에 속하였다” 하지 말기를 당부했습니다.
오직 주를 바라보고, 오직 하나님을 향해 굳건히 서 있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겠다’ 다짐을 했습니다.
각종 어려움이 닥칠 때 마다 정명석 목사님의 언(言)과 행(行)은 항상 일관됩니다.
“오직 주, 오직 하나님!” 그리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과 나는 1:1이다.”
그리고 자신의 달려 갈 길을 한치 흐트림 없이 가는...
칠흑 같이 어둡고 환란이 천지를 삼킬 듯 휘몰아치는 때에 이르러서는 자기를 돌아보며 잠잠히 삼위의 감동을 받는 대로...
그저 ‘자기의 달려 갈 길',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정진해 감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지 않아 불현듯 어둠의 폭풍 속 바다 위를 걸어 주께서 다시 내게 와 함께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