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각 시대에 말 그대로 '유행(流行)'했던 유행가 소재는 아마 십중팔구 '사랑'과 관련 된 것일 겁니다.
역시, 한 유행가의 가사처럼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단어를 명확히 정의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랑의 신(神)이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 '에로스'(Eros, Amour, Cupid 등으로도 불림)입니다.
에로스의 출생에 관련, 이설들이 존재하지만, 빈곤의 여신(Penia)과 풍요의 신(Poros)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로스'는 늘 궁핍하여 그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끊임 없이 '갈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소크라테스도 '에로스는 자신에게 없는것(결핍)에 대한 사랑'이라는 표현을 했고,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을 쓴 에리히 프롬도 그 책에서
'사랑이 없으면 인간성은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앎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며 합일을 통해 나를 찾고,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인간을 발견한다,'고 했습니다.
역시 '결핍'과 '발견' 그리고 '충족'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도 '사랑한다면 힘들 때 도와주고, 위로해 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가르쳐주고, 그 때 마다 합당하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통해 '결핍'과 그에 대한 '발견' 그리고 '충족'하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인데 꽤 '사랑'을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 됩니다.
단, 이러한 '정의'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말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결핍'이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우선 들게 됩니다.
나아가 "그 결핍을 인간이 '발견'하고 '충족'해 줄 수 있는가?"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상호 결핍과 충족을 하는 관계로 신과 인간은 '대등한 입장(신랑과 신부와 같은...)'에 서게 될 것인데...
전통적 종교관을 견지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 논리가 됩니다.
하지만 메시야이신 예수께서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 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큰 두 계명을 제시하면서 신에 대한 사랑을 최우선으로 강조 하셨습니다.
환언해서 인간들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 하면서 '충족'시켜 드려야 할 하나님의 '결핍'을 설명하셨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靈) 이십니다." 이는 물질의 '부재(결핍)'로 볼 수 있습니다.
논리적 비약이 있다해도 이 명제를 통해 하나님의 '결핍', 나아가 물질, 만물창조의 '동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하신 말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은 사랑 때문이다."와 만물 창조 역시 사람을 "사랑하려고 사랑의 터전을 만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위대한 말씀입니다.
오직 삼위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가진 자,
사랑의 말씀대로 변함 없이 살아온 사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 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신의 '결핍'까지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대등한 입장)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 사랑의 창조목적 인봉을 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와 같이 풀렸다면 창조된 사람들 역시 사랑하며 살아야 자기의 목적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만물 사랑, 사람 사랑, 창조주 사랑.
결국 “사랑이 아니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며, 사랑의 능력을 가진 자야말로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자신의 인생 목적도 이루며 잘 되고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되는 '축복 받은 자'인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결핍을 채워 주시기만을 간구하지 말고,
오직 '나'만이 채워 줄 수 있는 하나님, 주님의 '결핍'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