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태양이 눈부신 낮에 등불이 안 보이듯...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립고, ‘감사하다.’ 말 전하려 하니 그 받은 은혜에 한량없는 눈물이 흐르며, ‘사랑한다.’ 말하려니 큰 사랑에 목이 매여 오는 것입니다.
‘그립다.’ 말을 하려는 순간, 내 마음과 생각에서 ‘그리움’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고, ‘그리움’으로 정의 된 것! 곧, ‘이름 지어 지게 된 것(命名)’은 ‘형상화(形象化)’ 되어 마침내 실체가 되어 ‘몸’이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과 생각을 일으켜 다 잡으면 육은 그리로 따라 가는 법입니다.
그러나 번잡하고 소란스러워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이 가는 대로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듣고 살다 보니 육이 좋아하는 대로만, 육적으로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을 일도하면 육을 넘어서는 ‘혼’의 세계, ‘영’의 세계가 보이는데 그러지 못 하는 것입니다. 태양이 눈부신 낮에 등불이 안 보이듯, 육의 눈만 부릅뜨고 있으니, 영의 기능이 약하여 미처 보지 못 하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인생’
이 가을, 노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한 낮 눈부시게 뜨거웠던 태양의 속살을 이때는 눈 편히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가을’에 해당 되는 나이가 되는 것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젊음의 때 그 뜨겁던 욕망과 열정을 이제 서야 찬찬히 들여 다 볼 수 있으니 좋은 것입니다.
이렇듯 아름다운 노을, 아름다운 인생은 ‘어느 한 곳으로 쏠려 지나치지 않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눈이 가는 대로, 귀가 들리는 대로만 따라가면 육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니,
우선 내 마음, 내 생각을 다잡아서 내 생각과 의지대로 볼 것을 가려보고, 들을 것을 추려서 들을 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소란한 소리들 속에 하늘 언어를 통해 미세하게, 은은히 들려주는 하늘의 음성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때, 그 말씀대로 그와 일체 되어, 더불어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때, ‘영의 권세’를 잡는 자가 되고, 이때부터 육은 내 마음 먹은 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위대한 인생이 되는 것이라 말씀 해주셨습니다.
올 해 저는 저희 부친께서 갑작스레 잠자리에서 소천(召天)하시게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거의 반세기를 부자(父子)로 살았건만, 어찌 말 한 마디 아니 남기고 가셨나…
그의 죽음이 의아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오히려 아버지의 ‘죽음’보다 아버지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더군요.
무엇이 그에게 기쁜 일이셨던지? 무엇에 슬퍼하셨고, 어떤 때 외로움을 느끼셨던지?
또 나는 그의 기쁨에 얼마나 동참 했으며, 얼마만큼의 슬픔을 나눴었던가?
외로우실 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의 삶을 나는 얼마나 함께 해왔었던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성삼위'의 ‘기쁨’을, ‘슬픔’을 얼마나 함께 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조용히 답을 해 봐야겠습니다.
아름다운 들녘의 노을을 보며, 하루 일을 다 한 태양은 저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완성 하는 것이듯, 하늘 주신 ‘할 일’ 다 하며 그와 더불어 사는 인생 역시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해져 가는 것임을 깊이 깨닫는 이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