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포도가 맛이 없다.by 주아나

 

 


작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시댁에 가기 전에 신랑이 맛난 포도 한 박스 사드리고 싶다 해서
동네에서 꽤 유명한 과일 가게에 들렀다.
과일 맛 좋기로 유명한 가게였지만 주인이 너무 퉁명스러웠다.
과일값도 다른 곳에 비해서 몇천 원 더 비쌌다.
사람이 물건을 살 때 기분 좋게 사야 하는데 여기선 그렇지 않았다.
‘내 물건엔 자신 있으니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마시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밤 10시에 문 연 가게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그 가게로 갔다. 

포도를 죽 살펴보았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만원 초반대부터 3만 원대 넘는 포도도 있었다.
가격대비 싱싱하고 색깔도 잘 영근 녀석으로 하나 골랐다.
값도 15,000원이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복잡한 표정을 하더니 우리가 고른 포도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꽤 비싼 포도 하나를 꺼내더니 이것을 가져가라는 것이다.
“아저씨, 왜 이거 주세요? 우린 저거 골랐는데요?”
“모양은 똑같아 보여도 맛이 달라요.”
어라? 막판에 호구로 보이는 소비자에게 비싼 것을 팔아보시겠다?
“아저씨, 괜히 비싼 것 주시는 거 아니에요?”


“혹시 박피 포도라고 아시오?”
“그게 뭔데요?”
“여기 상자에 보시면 ** 지역이라고 쓰여 있죠?
그 외에도 **. ** 지역에서 나는 것은 되도록 사지 마요.
포도나무 껍질 벗겨서 재배하는 곳인데 맛이 좀 없어요.”
포도를 이리 저리 살폈지만, 전혀 차이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포도 알이 이렇게 까맣게 진한데 맛이 안 좋아요?”
“원래는 좋아야 하는데 이상한 놈이 있으니까 말이죠.
박피가 포도나무 줄기를 빙 돌려서 껍질을 벗겨 놓는 것이요.
그러면 영양분이 올라가지 못하게 해서 강제로 익히는 것인데
그럼 신맛이 강해요. 겉은 다 익은 것 같은데 맛은 덜 익었다는 것이지.”
“그럼 맛을 보고 비교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키운 포도보다 7-10일 일찍 출하할 수 있으니까,
남들보다 비싸게 팔아치울 수 있는 거지.
시중에 포도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먹을 것이 아니요.”


“세상에... 그런 포도가 있는 줄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오해해요.
올해 포도는 맛이 없구나. 이거 포도 못 사 먹겠네 이런다니까.
포도 농사 잘 지어도 이런 박피 포도들 때문에 손해가 심해요.
그러니 포도가 나오면 바로 사지 말고 일주일 이상 기다렸다가 사요.
그게 제 기간 숙성되어서 나오는 포도니까.”
“아저씨가 양심 있게 파시네요. 다른 가게에서는 그런 이야기 안 해줘요.”
“나도 거래처가 있어서 물건을 다 받기는 하지만 찜찜하거든.
정말 중요한 것은 사 먹는 사람들이 잘 알아야 해요.
포도 색깔에 현혹되어서도 안 되고 일찍 나왔다고 냉큼 사도 안 되고요.
아는 만큼 제값 주고 제 물건 사는 거예요.
소비자가 똑똑해야 이런 이상한 애들이 안 나오죠.”

아저씨가 두 상자에 포도 알을 하나씩 떼어 내어 주셨다.
하나씩 맛을 보니 정말 진한 달콤함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결국, 값을 만 원이나 더 주고 샀지만 아깝지가 않았다.
시댁 식구들이 정말 맛있다면서 좋아했다.

역시...
퉁명스러웠던 아저씨도, 포도도 겉만 보고는 알 수 없었다.
제대로 알고 보니 그 깊은 맛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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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