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할 때 하라!"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눠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지금은 어떤 때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이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이 때는...
언택(Untact)을 필두로 대면접촉이 어려워지면서 탈 글로벌, 탈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 되며,
동시에 '방역'이라는 정당성의 힘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자유와 권한까지 충분히 제한할 수 있는 그런 때 입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최근의 I,T 기술의 발달과 함께 소설 '1984년(George Orwell)'의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실제 등장 했다'는 표현까지 씁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여태 중히 여겨왔고 또 중심 해 왔던 일체의 가치(글로벌, 성장, 개인의 자유와 권한 등)와 그 실현을 위해 기울였던 우리의 노력 및 그 산물들을 전면 부정하고 뒤집어 엎어야 하는 그런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이 놀랄만한 '충격파'는 단기간 진행 되다 그치고 말,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라는 표현처럼 중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메가 트렌드로 인류 사회에 자리 매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역시 여태 중히 여겨왔고 또 중심 해 왔던 일체의 가치와 그 실현을 위해 기울였던 우리의 노력 및 그 산물들을 부정하고 뒤집어 엎는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명석 목사께서는 이와 관련 '자신을 만드는 일'에 방점(傍點)을 찍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 만들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자기 깨기(Break)'라는 것을 덧붙여 말씀 하셨습니다.
'자기 깨기'라는 말은 실로 엄중한 표현입니다.
'계란은 나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어 주면 달걀 후라이가 된다'
누군가의 말 처럼 '나, 스스로' 자신을 깨어야만 하는 것이며 이는 결국 여태 믿어 왔고 의지 해 왔던 '나'를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는 알 안에 든 병아리가 여태 자기를 둘러 싸 지켜 주고, 보호 해 주었던 생명과 같던 '알'을 깨는 것 같이 무척 곤혹스럽고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필자는 이를 다시 두 가지로 나눠 생각을 정리 해 봤습니다.
1. 내가 여태 믿고 있었던 것은 지식인가 진리인가
'지식'이란 것은 대개 '정해진 틀(Frame)에 따라 보편적이고 객관화 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점 때문에 '힘'을 갖게 됩니다.
이 '힘'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과 수용을 강제하게 하고 인정과 수용 여부에 따라 또 새로운 '틀'을 만듭니다.
새로운 '틀'이 만들어 졌다는 것은 새로운 '경계(구분선)'가 만들어 졌다는 말입니다.
틀의 '안'과 '밖', 나아가서 '내 편'과 '네 편' 그리고 '선'과 '악' 등등
다음으로 이 '틀'은 사람들로 하여금 틀이 정한, 혹은 정해 주는 일을 하면서 어떤 '기준'을 따르고자 하는 단순 '수행자'가 되게 합니다.
이에 비해 여호와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고 '진리'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틀을 벗어남(경계에서 자유로운 상태)을 말합니다.
'진리'는 정한 틀을 벗어나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에 '지식'과 구분 됩니다.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사람만이 단순 '수행자'가 아닌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창조자'(제2창조)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
지식이 '신념'(틀, 기준)이 되어 그에 대한 충성된 '수행자'가 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인지
틀에 매이지 않고 경계를 허물면서 '창조' 하는것이 자유로운 것인지 굳이 두 번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2. 말씀 '전하는 자'와 '듣는 자' 그 경계에 서 보라!
말씀을 '전하는 자' 와 '듣는 자' 그 경계가 허물어 져야 합니다.
단순한 '말씀 수용자'가 되게 하고 그 '틀' 안에서만 머물도록 하는 말씀은 '지식'이 됩니다.
말씀을 듣고 경계를 허물면서 새로운 창조를 해 갈 수 있게 하는 말씀이야말로 살아있는 말씀, '진리'입니다.
지식을 전하는 자를 우리는 '교사'라 부르고, 진리를 전하는 자는 '사도'라 부릅니다.
신약은 유대인과 헬라인, 이방인들과의 경계(내 편, 네 편)를 허물고,
말씀에 대한 단순 '수용자'(지식)들이 말씀에 대한 제2창조(진리)를 할 수 있는 '사도'로 변화 되었을 때 비로소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활 양식, 새로운 장르, 새 시대를 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 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에서 진행 되어야 하는 선교'는 우리가 이 전에는 경험 못 했던 형식으로 진행 되어 갈 것입니다.
일정 장소를 정하여 집회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특정 되어 구분 되는 그런 모습은 현저히 줄어 들기 시작 할 것입니다.
대신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경계를 허무는 형태로서 '진리'가 세상의 일상들 속에서 번져 나가는 모습이 아마도 새 시대에 맞는 선교 방안이 될 듯 합니다.
이를 위해 여태 '수용자(교사)'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기 깨기, 자기 만들기를 통해 '창조자(사도)'로 거듭 나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나는 여태 '진리'를 '지식'으로 바꿔 쌓고 있지는 않았는지,
진리를 전하는 자, 듣는 자 그 경계를 명확히 해 버리고 그 경계에 서 볼 용기를 내지 않고 살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자기 깨기'부터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