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그 날 내가 있던 장소와 배경, 그리고 당시 나의 심리 상태가 어떠했었다는 것까지,
흡사 영화를 찍어 놓은 듯 신기하리 마치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제게는 1985년 3월, 어느 토요일 오후가 그렇습니다.
큰 변화를 앞 두고 느낄 법한 막연한 기대와 불안, 그것들로 인해 뒤숭숭한,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누군가와 약속도 되어 있지 않은데 '내가 왜 여기에 남아 있지?'
마치 누가 발목을 붙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신기해 하며, 하교 후 한 참 동안을 학교 운동장 농구코트에 머물러 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갈릴레오를 심판 했던 그 날, 교회가 진리와 비진리를 결정하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기독교 3대째 모태 신앙이던 제게 학문을 통한 '지식습득'은 성경을 신화로 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유혹'의 도구였습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로 평생 살고자 했었던 어린 시절 꿈은 '신화'에 기반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내 일생을 허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가다가
급기야 무신론자가 될 지경에 까지 이르러게 되었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이름 외우는 급우가 얼마 없던 때,
저희 반의 'A'란 친구는 입학 전 부터 야심찬 기도로 준비, 1~2주간 새로 만난 급우들 상대로 전도 대상을 물색하다가
인생의 고민이 많아 보이던 친구 'B'를 '타깃'으로 정하고 수 차례 대화를 진행하고,
그 주 토요일 학교에서 꽤나 긴 시간의 마지막 설득 작업 끝에 자기네 교회로 말씀 연결하려고 했던 차 였습니다.
'A'와 함께 교회로 가던 'B'가 마침 늦게까지 홀로 농구장에 있던 저를 발견하고는 '너도 교회 다닌다 했지? 마침 A 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니 함께 가자'는 '거짓말'로 같이 갈 것을 권합니다.
저를 당장에 전도해야겠다 생각은 없었던 'A'는 못 마땅했지만, 사전 동의도 없이 불쑥 던진 'B'의 제안과 그에 "그럴까" 따라 나서는 저를 굳이 말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 연결 된 '말씀 공부'
'이렇게 해석 할 수도 있겠구나' 신기해 하다가
이거 잘 못 하다간 큰 일 나겠다는 생각까지 든 것은 중고급 정도에 들어 갈 때 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 말씀이 잘 못 된 것이라면 오늘 밤 내 육의 목숨을 거두시어 영혼 구원이나마 받게 하소서"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 해 지는 목숨을 건 기도.
아침에 '살아서' 눈을 뜨고 나니 정말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확인 해야겠다 싶어
한 주 내내 '처음으로' 말씀을 깨달아 분별하게 해 주십사 간절히 기도하고 다음 주 토요일 듣게 된 '부활론'
부활의 비밀을 깨닫고 성령이 임하시어 온 몸이 뜨거워졌던, 그 '온도'가 지금까지 체온 속에 남아있는 듯 합니다.
부활론을 듣고 '성령'을 받은 그 날이 저의 육 생일이었기에 하늘로부터의 생일 선물을 받은 것이라 지금까지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 서 3월 '농구장'의 만남,
제 삶의 놀라운 변화가 시작 되었던 그 토요일이 '16일'이었다는 것을 이 번에 당시 달력을 찾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날 나를 붙잡아 새 역사로 옮겨 놓으셨던 이 역시 친구 A도, B도 아닌 '성령'이셨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하리 만큼 생생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날,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은밀하게 진행 된 위대함을 만나게 되었다면 무조건 하늘에 감사하십시오.
그것은 틀림없이 성삼위 주께서 나를 위해 오래도록 계획하시고 '때'가 되어 진행하신 바로 그 역사입니다.
아니, 매사에 감사하십시오.
내가 알든 모르든 하늘 앞에 지고 있는 감사의 빚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떄 마침 금년도 3월16일이 그 때 처럼 토요일입니다.
34년간 모른 채 지고 있던 감사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