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업무 차 이집트를 가게 되었을 때 굳이 틈을 내어 이집트 박물관까지 들러 볼 수 있었던 것은 피라미드, 스핑크스를 둘러 본 것 보다 더 큰 선물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이집트인들의 생과 사에 대한 상상력, 그리고 사 후 세계를 대비하여 사자(死者)를 다룬 기술과 방법들을 유물 통해 눈으로 직접 보니 마치 죽음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듯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이집트인들의 마아트(ma'at)
사 후 부활을 위해 미이라(mummy)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심장’을 특히 소중하게 다루었는데 사자(死者)의 '천국과 지옥'을 결정할 최후의 심판 때 꼭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은 저울을 통해 결정 되는데 저울의 한쪽에는 ‘마아트(ma’at)‘라 불리는 깃털이 놓이고 다른쪽에 잘 보관 되어 있던 죽은 이의 '심장'이 올려집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묻는다고 합니다.
‘선행’과 ‘악행’을 따져 묻고, 각각의 그 무게를 저울질 해 볼 것이라 상상하기 쉽겠지만,
“당신은 당신의 마아트(ma'at)를 알았는가?” 그리고,
“그 마아트 대로 살았는가?”를 묻는다고 합니다.
이 마아트는 각 사람이 태어나면서 ‘위(하늘, 신...)’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소명,천명)’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결국 마아트를 ‘찾기 위해’ 또 그와 관련되어 내 ‘마음과 행실’이 어떠했던가를 보고 나의 구원을 결정 한다는 것입니다.
'주'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늘 나는 그 옛날 이집트인들과 같이 내 '심장'을 향해 진지하게 물어야합니다.
“너는 너의 마아트를 알고 있는가?”
“그 마아트 대로 살고 있는가?”
정명석 목사님께서도 오직 하나님 뜻(마아트)을 제대로 알고, 행한 것만이 내 영의 ‘미(美)’를 빛 내주며, 이렇게 빛나는 '아름다운 영혼'들만이 ‘하늘의 것’, ‘하나님의 것’이 됨을 깊이 깨달아야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마아트에 관한 두 질문에 “Yes!, Yes!”를 쉽게 말할 자 얼마나 될까요?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구원주 강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져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아트를 알 수 있게 해 주실 자,
마아트를 행하도록 돕고, 혹여 행하지 못 했을 경우(죄)라도 그 죄를 ‘용서의 수를 따지기 않고’ 기꺼이 사해 주실 이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 주실지...
혹 밤에, 혹 낮에,
이상한 구름만 떠도 하늘을 올려 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오랜 기다림'은 그 '오래 됨'으로 인해 모두를 지쳐 버리게 만든 것 같습니다.
주의 임재에 대한 희망이 흐려짐은 인류의 희망이 흐려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는 허울아래 정상(正常)아닌 것이,
정상일 수 없는 것이 마치 정상인 것 처럼 되어가는(미쳐가는) 세상의 단면들을 볼 때
'주의 오심'은 어느 때 보다 절박한 것입니다.
하늘의 뜻(창조목적)을 알게 해 주러 오실 분,
그 목적, 뜻대로 살 수 있게 혀 닳도록 가르칠 이,
더 할 수 없는 조건으로 허다한 죄를 용서해 주실 분,
그 분이야 말로 사람들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인류의 희망이 되실 분 입니다.
내 심장이 저울에 달리기 전에 반드시 '주'를 만나야 하는 것이 그리도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