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은 결코 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바둑 대국(인공지능 알파고 대 인간 이세돌)이 끝나고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저의 뇌리에서 쉬이 떠나지 않습니다. 곰곰이 되씹어보니 인간(이세돌)은 결코 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은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4승 1패, 5개의 새로운 사례를 추가한 것이 이번 대국을 통해 얻은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인간은(이세돌과 함께) 대국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과 기대, 실패에 이은 좌절 그리고 다시 도전하고, 짜릿한 승리감에 호기(豪氣)까지 부려 보고, 끝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모두 공유했습니다.
그래서 대국 이전의 인류(이세돌)와 또 대국 이후의 다른 인류로 ‘진화’(예, 이는 분명히 ‘진화’입니다.) 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얻은 상태’를 ‘졌다’고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 지켜봤듯 바둑을 두는 ‘기술’에서는 이미 기계가 앞섰고 앞으로 해당 분야에서의 진화도 더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결국,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말 그대로 ‘바둑의 신(神)’이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인류(기계와 달리 제한되고 유한한 인생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정보 조합’을 통해 ‘기술’을 늘리는 것으로 기계와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봐야 할지 모릅니다. 오히려 주어진 생(生)을 더 많이 기뻐하고, 더 아파하고, 더 희망하고, 더 쓰라리고, 더 기대하면서,
더 감사하고 더 사랑하면서 삶의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 가는 것’ 그리고 이를 ‘선한 의도로 공유하는 것’에 집중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더 충만하게 살기로 각오했다면, 그리고 실제 그리 살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인공지능에 지지 않은 것이며 또 앞으로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성 체로 절대 가치를 키워 가는 ‘성장(成長)’ 갓 태어난 아기들은 사실 비슷비슷한 외모들로 부모라도 한눈에 구분하기는 힘듭니다. 신생아가 ‘성장’하면서 외모가 달라지듯 그 ‘영혼’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면에서, 다른 일들과 경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삶을 충만하게 채워 가는 과정을 통해 각기 다른 ‘인생(영혼)’들로 성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중복됨으로 대체될 수 없는’ 절대가치의 개별적, 개성 체로 성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정명석 목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개성으로 창조하셨다.’ 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구성요소들로 충만해진 인생들은 저마다 ‘.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 희망하는 것, 추구하는 것’이 다르게 된 것입니다.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것. 이것이 참으로 신비(神秘)로운 창조 원리요, 동시에 놀라운 축복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 얼핏 생각해도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 그래서 저는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는 이를 ‘개성의 왕 살아 먹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 제 마음대로 사는 ‘방종(放縱)’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성장하지 못한 자(충만하지 않은 인생)들이 제 마음대로 살면 ‘방종’입니다.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는 나이 삼십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고, (而立) 마흔 넘어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 미혹되지 않았고(不惑), 쉰의 나이에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耳順), 인생 70에 이르러서 내 마음대로 해도 법을 벗어나지 않았다(‘從心’, 從心 所欲 不踰矩) 했습니다.
이와 같은 ‘종심(從心)’의 경지를 ‘주님이 내 머리’ 되신 상태로 정명석 목사께서 정의 해 주셨습니다. 인생 70을 또 다른 말로는 ‘고희(古稀)’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드문 경우(古來稀)’라는 뜻에서 유래했는데, 진정 ‘주님이 머리 되어 사는 인생’이야말로, 천지창조 이래(古來) 보기 드물었던(稀) 새로운 인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