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_정명석 목사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jms) 정명석 목사는 누구인가?

정명석 목사는 10대 초반부터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왜 태어났는가?
왜 먹어야 하나?
왜 나는 여기 산골짝을 못 벗어나고 살아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좋은 도시에서 태어나 뱀과 엉겅퀴가 있는 무서운 잡초 숲의 환경에서 살지 않고 아예 풀도 없고 뱀도 없는 곳에서 먹을 것을 산같이 쌓아 놓고 시장에서 마음대로 사 먹으면서 사는데.
왜 나는 뒷산에 등 기대고 앞산에 발을 쭉 뻗으면 닿을 정도로 좁고 답답한 곳에서 태어나 살아야 하나?’ 라고 정명석 목사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곳 내 고향을 떠나야 한다.’
 


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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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전의 월명동의 모습


산골짝에 살면서 그나마 가정이 화목하면 좋은데, 부모님이 자주 싸우셔서 큰 소리로 화내는 소리가 떠나지 않으니 집이 편치 못했다. 이것도 정명석 목사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산골짝은 좁지만 잠자는 집이라도 크고 방이라도 넓으면 좋은데, 그나마 방도 너무 작아서 8자 방에서 7명이나 자야 하니 방에서는 겨우 잠만 잘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비가 오면 집에 비라도 새지 말아야 하는데, 비가 올 때마다 방에 줄줄 비가 새고, 빗물을 그릇에 받아도 곧 방바닥을 적시니 늘 걷어 내야 했습니다.


방에 비만 새고 말면 그래도 참고 살겠는데,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초가집 지붕이 날아가고, 흙벽이 무너지며 세찬 바람에 집이 무너질까 자다가 방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150년 이상 오래된 초가집이라 많이 썩어 있기에 부모님은 항상 비바람이 불 때마다 걱정되어 마루에 나와 계셨습니다.


그리고 비상을 걸어 모두 방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잠은 오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면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잘 수도 없었고, 먹장구름에 날은 깜깜한데 비는 하염없이 쏟아져 공포심도 더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정명석 목사는 그날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공룡바위 밑에 가 있으면 비가 와도 새지 않고 바람 불어도 쓰러질 걱정이 없으니,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그곳으로 비를 피하러 다니게 되었습니다.

날이 새면 먹을 것이라도 배부르게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쑥을 캐다가 쌀을 아주 조금 넣고 쑥을 많이 넣어 쑥죽을 끓여서 한 그릇씩 겨우 먹었습니다. 형제 중에 누가 한 그릇이라도 더 먹으면 어머니가 드시지 못했습니다. 더 먹고 싶어 해도 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7남매가 다 양보해야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으니, 더 먹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낮에는 각각 칡뿌리를 캐 먹으려고 괭이를 들고 산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먹는 것으로는 모자라 배만 올챙이같이 나오고 허벅지와 가슴에는 살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허벅지는 젓가락이고, 가슴은 새가슴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에는 허벅지에 통통하게 살이 붙은 사람을 보고 ‘꿀벅지’라고 말하는데 정명석 목사가 성장하던 때는 그런 엄청난 단어가 없었습니다. 꿀벅지 시대가 아니라 ‘새벅지’  시대였습니다. 산에서 칡뿌리를 캐서 일부는 먹고 일부는 집에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모두 둘러앉아서 형제들이 캐 온 칡뿌리를 찢어서 말렸다가 후에 먹었습니다.형제들을 쳐다보면 까만 칡뿌리를 캐 먹고 사니 이빨이 노랗고 새까매서 돼지를 방불케 하니 서로 돼지라고 하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왜 사는가? 왜 태어났는가?

이렇게 어렵게 사니 10대 초반부터 ‘인생은 왜 사는가? 왜 태어났는가? 왜 먹어야 하나?’ 생각하고 고민하며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10대 초반 때 무슨 고통이 그리 많았는지, 이제는 정명석 목사의 말을 듣고 알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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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의 가족


또한 시골에서 살면 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것이 죽는 것만큼이나 싫을 정도였습니다. 정명석 목사의 작은형은 “북한에서도 이같이는 일하지 않을 거야. 정말 일이 지겹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 말에 다른 형제들도 모두 맞는다며 맞장구쳤습니다. 그렇게 밭을 매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나르고, 각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해도 배가 고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일을 했으면 추수하여 곡간에 쌓아 두고 많이 먹었을 것인데, 농사지을 땅이 없어 여기저기 잡초밭을 가꾸어 조금씩 곡식을 심으니 거둘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정명석 목사의 아버지는 “이같이 살다가는 굶어 죽는다. 광산에 가서 일하다가 금을 파내게 되면 모두 굶어 죽지 않고 산다.” 하시며 타향 땅에 황금만 파내러 다니셨습니다. 그러니 가정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아버지가 통솔하여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부수고 집이라도 다시 지으면 좋겠는데, 정명석 목사 나이 26세가 될 때까지 집도 다시 짓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두 형은 "여기에 다시 집을 지으면 여기서 또 살게 된다." 하며 집을 다시 짓지 않으려 했습니다. "걸어서 못 나가면 기어서라도 이곳에서 나가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 며 집을 헐고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집을 지으려면 돈이 어느 정도 몇 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집에는 땡전 한 푼 없었습니다. 또 배고파 허기가 져서 다니는데, 그 힘으로는 집을 다시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이러한 생지옥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 입에서는 항상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보통으로 수시로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이곳을 뜨는 것만이 천국이다. 이상세계다.” 하고 늘 노래를 부르면서 고향을 떠나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같은 가혹한 고통을 계속 겪으니 정명석 목사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더 좋은 길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보면 한숨만 나왔습니다.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같이 무겁고 괴로운 인생의 짐, 가난의 짐, 걱정·근심·염려의 짐, 환경의 짐을 지고 온갖 고통을 겪고 살 때 정명석 목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생을 창조하셨나요? 그리고 왜 빈부의 격차가 있게 하셨나요? 공평하게 살 수는 없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가진 것도 많으신데, 인생들이 이같이 불쌍하게 사는 것을 보시면서 마음도 아프지 않으신가요?” 했습니다.
 

인생을 생각하면 한탄이 나오고, 푸념이 나오고, 곤고함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10대 초반에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과연 인생은 무엇일까?’ 늘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참된 길은 무엇일까? 삶의 길은 무엇일까? 신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단 말인가? 인생에게 얻을 것이 무엇인가? 동물은 예뻐하거나 잡아먹으려고 기르는데, 하나님은 뭘 보시려고 인생들을 기르시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안 계시는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계시는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잘해 드려야 도와주십니까?’ 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인생이 정말 힘들어 죽고 싶었으나 죽을 수는 없으니 하나님께 매달리며 인생길을 찾았습니다. '이같이 인생 철학의 쇳덩이 짐까지 지고 쓰러져 기어 다니면서 마음의 짐을 지고 살고 있는데, 하나님도 계시고 사랑의 예수님도 계시는데 왜 안 도와주시나?' 하며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은 답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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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하나님과 예수님을 불러도 답이 없고,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답이 없었습니다. 결국 ‘공부해서 살길 찾자!’고 결심했습니다.

정명석 목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성경을 뒷전에 두고 세상 책으로 공부하러 다리골 기도굴로 갔습니다. 가정 형편이 안 되니 학교에 가서 배울 수가 없었기에 세상 책을 가지고 조용한 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책을 보며 공부해도 깊은 뜻이 없었습니다. 세상 지식은 인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못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는 길이 곧 인생이 해결되는 길이었기에 그 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 내게 인생을 배워라


그래서 정명석 목사는 뒤에 제쳐 놓았던 성경을 다시 꺼내어 읽었습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때 이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이 성경 구절을 읽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나요?” 했습니다.
이때 ‘말씀대로 하면 된다.’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깊은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이 흰옷을 입고 정명석 목사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대로 해 주겠다고 하시며 “내게 인생을 배워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게 배우고 행하면 해결된다.”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깊이 기도하면서 주님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하나하나 배우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우고, 각종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배웠습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석 달씩 주님께 배우는 가운데 어느새 걱정·근심·염려의 짐, 먹고 입고 사는 생활의 짐, 인생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렇다고 밥이 생긴 것도, 새집이 생긴 것도, 옷이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인생을 왜 사는지 걱정·근심·염려·번민이 사라지고, 마음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죄’에 대해 배우고, 과거에 죄로 생각하지 않은 것들까지 모두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회개해야 함을 깨닫고 죄들을 회개했습니다. 결국, 죄의 짐도 벗어 버리게 됐습니다.

예수님께 성경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마음과 그 심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 배운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엄청난 것을 한 번에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 후 굴에서 나와 계절 따라 산에서 여는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습니다. 산머루, 산포도, 다래, 으름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아도 주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따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고 3년 후 귀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나의 말씀으로 옛 주관과 기성 주관권에서 벗어나듯, 옛집도 때려 부수고 새 집을 지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150년 된 초가집을 부수고 함석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때부터 노방전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와라.”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거지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기도해 주며 주님과 같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더 깊이 성경을 배웠습니다. 먼저 배우고 알아야 하나씩 해결됐습니다. 20년 동안 배웠습니다. 주님은 정명석 목사 한 명을 데리고 섭리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복음을 전하여라. 지금 이때다. 전하면 많은 생명이 돌아온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주님이 하시니 시대 복음은 점점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같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여러분도 주님 앞에 가까이 와서 배우고 꼭 근본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진 사람들은 예수님께 바짝 와야 합니다. 더 가까이 바짝 와서 주님의 멍에를 지고, 곧 주님의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배워서 온전한 진리를 알고, 성경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과 성령님도 알아야 합니다.
 

정명석 목사는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 앞에 가까이 가서 주님의 멍에를 지고 주님께 배웠습니다. 주님께 인생을 배우고 인생에 대해 알고 행하니 주님 말씀같이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웠습니다. 인생의 죄 짐을 완전히 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짐은 가볍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고 알고 행하면 가볍고 쉽다.” 하셨습니다. 인생의 죄 짐은 벗어야 합니다. 그러나 삶의 멍에는 벗으면 죽는 날입니다. 삶의 멍에는 더 가벼워지고 쉬워질 뿐입니다. 모두 정명석 목사와 같이 주님께 가까이 감으로 더욱 사망권의 무거운 짐을 벗고, 회개함으로 죄의 짐을 완전히 벗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고 알고 행하여 주님의 뜻대로 쉽고 가볍게 인생 살기를 축원합니다.

 

정명석 목사는 지금도 주님의 멍에를 메고 오직 주님께 배우며 주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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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