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정명석 목사는 1970년대 80여개 교파를 탐방하는 과정 중 통일교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 종교 의례, 사업 확장을 중시하는 부분 등에서 자신과 관점 차이가 큼을 확인했습니다. |

나의 스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통일교 교리와 정면 충돌
정명석 목사는 과거부터 설교 말씀을 통해 1975년경 종교 탐방 기간 중 겪었던 통일교에 대한 견해를 종종 드러내 왔습니다.
정 목사는 통일교를 탐방하며 통일교의 조직력과 규모를 체감했고, 한때 “통일교로 가면 내가 받은 진리의 말씀이 더 빨리 전파될 수 있겠다”는 현실적 유혹도 있었다고 과거 설교 단상에서 솔직히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받은 말씀과 통일교의 교리·관점 사이에서 타협이 불가능한 본질적 차이를 깨닫게 되었고 결국 독자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보았지만 통일교는 예수님을 멀리하고 있었고 기독교는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있었지만 교리가 약했다.
그래서 어디로 갈거나? 상당히 헛갈렸는데 하늘은 “벧엘(=기성 기독교 교단)로도 가지 말고 길갈(=통일교)로도 가지 말라.”고 하셨다.
벧엘로 가면 허무하게 끝나고 길갈로 가면 사로잡히게 된다고 하셨다.
“너는 오직 여호와를 찾아라! 네가 직접 이 말씀으로 난 자식들이라야 진짜 너를 따르고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만이 걸어온 길' 중에서)
먼저 정명석 목사는 자신의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이자 구원자로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통일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사명에 실패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일교는 이상하니 (예수님에) 대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 실패했다, 이런 이야기만 합니다.
내가 거기서 설교할 때 예수 이야기를 하니까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중략) 예수님이 나를 가르쳤고 죽을 때까지 나의 애인이라고 했으니까!
그랬더니 날보고 아직도 구시대를 못 벗어나서 예수 이야기만 한다고 그러더라구요.”(1991.11.3.)
“그런데 통일교 같은 데는 어떻게 하는가 하니, ‘예수님은 실패자. 왜? 죽었다. 뜻 못 이루었다.’ 해요.
아이고! 도대체 무슨 뜻을 이루었다, 안 이루었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죽었어도 다 이루고 갔어요. 그것이 메시아지요. 그렇지요?”(2020.11.4.)
통일교 안에서 접했던 다양한 종교 의식과 문화 역시 정 목사가 지향하던 신앙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들이었습니다. 정 목사는 자신이 경험한 통일교의 예배 형태가 미신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약 시대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통일교 지도부가 부흥집회 이후 뒷풀이 중 술을 권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신앙을 이유로 복직됐다는 명분 아래 음주를 용인하는 문화는 하나님의 법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음식 갖다 놓고 돼지 대가리 갖다 놓고 절을 하길래 이것은 완전히 우상이구나…주일날 새벽에 강대상 앞에서 전부 절하면서 하나님을 우상식으로 섬겼습니다.”(1992.08.30.)
“진산에 있는 통일교에 갔었는데 초상집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불을 넘어가라고 하고, 소금을 뿌리더라구요...
그것이 미신법이지 뭡니까? 나는 확실히 압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에 다녔기 때문에."(1996.12.21.)
“내가 통일교에 가서도 부흥집회를 해 보았는데 끝나니까 맥주를 갖다주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놀래버렸습니다.
... 지금은 술을 다스리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다 다스려야 된다고 했습니다.”(1989.01.08.)
또한 정 목사는 종교가 세속 권력이나 물질과 결탁할 경우 신앙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보며 복음 전파와 개인의 영적 성장에 집중하는 신앙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는 통일교가 복음 전파보다 사업 확장에 치중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통일교 같은 곳은 사업체 수백 개잖아. 우리는 하나도 없어. 왜? 오직 내 자신이 하나님만, 하나님 복음 전하는 일만 하는 거야.”(2021. 06. 04. 새벽설교 중)
뿐만 아니라 이후 정명석 목사는 통일교가 자신이 정리한 30개론 말씀 도표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고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 목사는 자신의 도표를 넘겨주면 통일교 측이 이를 없애거나 자신들의 교리에 종속 시키려 할 것을 우려해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너무너무 엄청난 도표를 갖고 있으니까 그 도표를 자기네들한테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도표를 주자니 애인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애인을 남한테 맡기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도표는 애인보다 더 소중하고 세상의 금은 보화보다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온 인류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니까!”(1990.03.25.)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점, 종교 의례 등 여러 측면에서 통일교가 자신의 신앙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한 정 목사는 독자 노선을 가야 함을 깨닫고 1978년 6월 서울에서 새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반세기 가까운 영광 그리고 시련의 시간 속에서도, 그가 전한 진리의 빛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나는 통순이도 안 따라가고 기순이도 안 따라간다. 기독교에도 안 가고 통일교에도 안 갑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십니다. 수만 명이 따라오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다른 것은 없습니다. (1991.11.3 주일설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