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长]的三分钱专栏时间!局长的文笔水准或许不值[三分钱]...但还是解开主日话语后采用世上的语言撰写成专文啰。
정명석목사께서 한국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에 매진하시던 중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이 보기와 달리 체력이 약한 것을 아시고, 새벽마다 조깅을 시작하셨던 때의 일화입니다.
관악구의 한 공원에서 조깅을 마치고 나오는 길 앞에는 호떡 장사가 있었는데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에게 호떡을 모두 사 주시면서 나눠 드시곤 하셨습니다. 그 때 무척이나 뜨거운 호떡을 주인장이 아무렇지 않게 손 대는 것을 보고 놀라셨습니다.
‘매일 굽다 보니 손에 감각이 없어져서… 아무 느낌도 없어요.’
호떡집 주인의 이야기에 ‘신앙의 감각이 죽으면 안 되겠다’ 깨달으시고 이를 말씀으로 전해 주셨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감각’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감각이 민감하게 살아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아픔’은 사실 신(神)이 주신 축복입니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다가 그 뜨거움에 소스라치도록 놀라면서 혀가 아린 심한 통증을 느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감각이 살아 있어 ‘통증’을 느꼈기에 뜨거운 국물을 얼른 내 뱉을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구강과 식도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한 동안 식음을 전폐해야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기도든, 선교활동이든, 자기가 맡은 사명 분야에 감각이 살아 있어 해당 분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아픔’을 느끼고 이를 시정할 수 있도록 ‘감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나에게 ‘해(害)’가 될 요소들을 그저 무감각하게 껴 안고 가다보면 뜨거운 국물을 입 안에 머금고 있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통’은 모두 버리고 뱉어 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통은 수용하고 받아 들여 ‘자기화(自己化)’ 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오랜 시간 노력해서 얻게 된 굳은 살은 빼 내 버릴 것이 아닙니다. 분명 고통이고 아픔이지만 내 살의 일부로 ‘수용’ 되어질 때 그 손으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연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테네와 로마는 비슷한 수준의 도시국가였습니다.
아테네는 자기들과 싸운 정복 국가의 국민들을 승전 후 짓 밟고 이류민족으로 여겨 차별 대우 한 반면, 로마는 전쟁 중 잔인하게 자신의 아들, 남편을 죽인 국가들의 귀족들을 로마 원로원에 정중하게 추대하고, 그 국민들에게도 동등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 함으로써 자기네들과 똑 같이 대우 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아테네와는 도저히 견줄 수 없을 만큼 대 제국을 로마는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했던 몽골군도 경기병(light cavalry)중심의 빠르고 가벼운기동력을 중심으로 전투를 수행하다가 적국의 중기병이나 각종 중화기류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승전 후에는 이러한 이민족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기 위해 이전 ‘몽골군의 살인자’들을 ‘형제’로 받아 들여 같이 싸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칭기스칸’의 철학이 바탕이 되었는데, 그는 어렸을 때 가까운 일가 친척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살아 남을 수 있었는데, 어린 칭기스칸은 ‘가족들에게 조차 버림 받은’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나약하고 폐쇄적인 인물로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의 도움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게 여겨, 혈연이나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 ‘누구나 내 형제 일 수 있다.’ 는 ‘건강한 개방성’으로 잘 승화 시켰습니다.
‘아픔’을 긍정적으로 잘 ‘수용’해 낸 결과입니다. 이와 같이 로마나 몽골 모두 자기들에게 ‘아픔’이었던 것을 수용하는 힘(관용의 힘)으로 제국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어떤 ‘아픔’에는 즉각 반응하여 내 뱉어 낼 수 있어야 하되, 동시에 어떤 ‘아픔’은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자기화’할 수 있는 것.
위대한 ‘자아실현’과 ‘제국건설’의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