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엄마의 흰머리by 날개단약속

엄마의 흰머리

 

 

 -김형영-

 

 

엄마는 '무슨 일을 하던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하시며 나를 절대 믿으신다.
학교 다닐 때도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면서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결혼식을 할 때도 그러했기에 나는 신랑과 같이 둘이서 결혼준비를 했었다.
집을 구하랴, 살림을 장만하랴 정신이 없었다. 프라이팬 하나를 사더라도 종류가 20가지가 넘으니, 참으로 모든 준비가 산 너머 산이었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준비를 하나하나 끝내고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무사히 잘 마쳤다.


여행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집에 방문했다. 여행 선물을 꺼내서 가족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엄마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니고 새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밝은 등에서 흠칫흠칫 살펴보는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흰 머리가 너무 많이 늘어난 것이다. 결혼 전만 해도 흰 머리가 가뭄에 콩 나듯이 몇 개 정도였는데, 지금 엄마의 머리는 살짝 들쳐 내기만 해도 흰머리가 수두룩했다. 놀란 얼굴로 엄마에게 물어보니 살짝 쥔 주먹으로 내 머리에 꿀밤을 놓더니, '너 결혼식 하면서 이렇게 생겼다' 고 말씀하셨다.


아, 네 알아서 하라는 말이 정말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맏딸이 시집가는 것이니 얼마나 챙겨주고 싶었을까. 장롱이며 살림살이며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도 딸 신경쓸까봐 네 맘대로 하라고 한 것인데, 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 제 맘대로 했으니, 엄마 마음이 오죽 씁쓸했을까 싶다. 엄마가 나를 그냥 지켜보았던 시간만큼, 그 애타는 마음이 하얗게 새어 재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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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