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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통by 도토리

 

 플라스틱 통

 

 

 -이정명-

 


 

"엄마 나 이거 가져가도 되지?"
"그건 또 왜 가져 갈라카노?!! 필요한 거 있으면 하나 사라~!"
엄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가방에 챙겨 넣었다.
아버지 제사가 있어 친정에 갔다가 깐 밤을 넣어 둔 작은 플라스틱 통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책상 휴지통이 필요했는데 막상 사려니 아깝고 작은 박스를 책상 구석에 놔두었지만 영 맘에 들지 않던 차였다. 투명한 게 크기도 앙증맞고 뚜껑도 있어 딱! 마음에 들었다.

 

 

내 책상 위에는 엄마가 알면 당장 내버리라고 할 물건이 하나 더 있다.
작은 스프라이트 패트병을 잘라 만든 초록색 연필꽂이.
러시아에서 언어연수를 하던 시절, 마트에서 발견한 스프라이트 병을 잘라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가져온 돌맹이 몇개를 바닥에 깔아 무게중심을 잡고 이름표까지 붙여놓곤 얼마나 뿌듯해 했던지. 입구에는 자주 사용하던 작은 집게들을 꽂아놔 언제든지 빼 쓸 수 있게 해 놓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쌀 때도,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꾸밀 때도 그 연필꽂이는 꼭 챙겼다. 지금도 러시아 기숙사 책상 위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책상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좋은 물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나까지 그 좋은 물건 다 가질 필요 있나? 내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고 누가 뭐래든 내 마음에 들어 만족스러우면 그만인 거 아닐까. 책상 위 두 플라스틱 통들을 보며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세상에 나를 만족시켜 줄 것이 많을 것 같다.' 라는 소박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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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8/11